광주 상무 축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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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광주 상무 축구단은 대한민국 국군 축구단으로, 1984년 창설되었다. 2002년 광주월드컵경기장 활용을 위해 광주광역시와 연고 협약을 맺고 K리그에 참가했다. 2003년 광주 상무 불사조로 K리그에 참가하여 2010년까지 활동했으며, 이후 상주 상무 피닉스로 연고지를 이전했다. 2002년에는 이천 상무라는 이름으로 K2리그에 참가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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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 상무 축구단은 국군체육부대 예하 프로 축구단으로, 2002년 창단하여 K리그에서 활동하다 2020년 김천 상무 FC로 재창단되기 전 K리그2 2회 우승 및 FA컵 1회 우승을 기록했다. - 국군체육부대 - 상무 농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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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상무 축구단 - [스포츠팀]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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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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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 이름 | 광주 상무 프로축구단 |
별칭 | 불사조 |
창단 연도 | 2003년 광주 상무 불사조 창단 1984년 상무 축구단 창단 (모체) |
해산 연도 | 2010년 |
연고지 | 광주광역시 |
연맹 | 한국프로축구연맹 |
경기장 | 광주월드컵경기장 |
수용 인원 | 40,245명 |
구단주 | 부재원 |
감독 | 이수철 |
리그 | K리그 |
영어 명칭 | Gwangju Sangmu Football Club |
유니폼 색상 (홈) | 주황색 |
유니폼 색상 (원정) | 흰색/검은색 |
2. 역사
상무 축구단은 1984년 창단 이후 주로 실업 리그에서 활동했다. 2002년 FIFA 월드컵 개최를 위해 건립된 광주월드컵경기장의 활용 방안을 모색하던 광주광역시는 2002년 국군체육부대와 연고 협약을 맺고 상무 축구단을 유치했다.[1] 이는 상무 축구단 역사상 첫 지역 연고지 선정이었다.
2003년부터 '광주 상무 불사조'라는 이름으로 K리그에 참가하기 시작했으며,[3][4] 이는 1985년 이후 18년 만의 프로 무대 복귀였다. 광주 연고 시절 동안 K리그에서 경쟁하며 2008년 FA컵에서는 8강에 진출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당초 2008년까지였던 연고 계약은 광주광역시의 시민 구단 창단 약속 이행이 늦어지면서 2010년까지 연장되었다.[5]
2010년 시즌 종료 후, 광주광역시가 시민구단인 광주 FC 창단을 확정함에 따라 광주 상무와의 연고 계약은 만료되었다. 이에 상무 축구단은 2011년부터 경상북도 상주시로 연고지를 이전하여 상주 상무 축구단으로 새롭게 활동하게 되었다.
한편, 1군 팀이 광주를 연고로 K리그에서 활동하던 2003년부터 2005년까지 2군 팀은 이천시를 연고지로 하여 '이천 상무'라는 이름으로 당시 실업 리그인 K2리그에 참가했으며, 2006년부터는 1군 팀의 2군으로 통합되어 R리그에 참가했다.
2. 1. 상무 축구단 (1984–2002)
'''자세한 내용은 상무 축구단 문서를 참고.'''2. 2. 광주 상무 축구단 (2002–2010)
2002년 FIFA 월드컵을 위해 건립된 광주월드컵경기장의 사후 활용 방안으로 광주광역시는 프로축구단 유치를 결정했다. 새로운 구단을 창단하는 대신, 당시 실업 리그에 참가하고 있던 상무 축구단을 유치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2002년 4월 13일, 국군체육부대와 광주광역시는 공식적으로 연고 협약을 체결하였고,[1] 이로써 상무 축구단은 역사상 처음으로 특정 지역을 연고지로 삼게 되었다. 이 협약은 2008년까지 유효했으며, 광주광역시는 이 기간 안에 새로운 시민축구단을 창단하기로 약속했다. 결과적으로 광주시는 가입비 10억원과 축구발전기금 30억원을 합쳐 총 40억원을 한국프로축구연맹에 납부하고 한시적으로 상무를 유치한 셈이었다.[2] 연고 계약 체결 시점이 리그 개막 이후였기 때문에, 2002년에는 K리그 참가 대신 2군 리그인 R리그에 참가하여 B조 1위를 기록했다.2002년 12월, 광주 상무는 정식으로 K리그 참가 신청서를 제출했고, 이듬해 1월 승인을 받아 2003년부터 '광주 상무 불사조'라는 이름으로 K리그에 참가하게 되었다.[3][4] 이는 상무 축구단이 1985년 이후 18년 만에 프로 무대에 복귀하는 것이었다. K리그 복귀 첫 해인 2003년에는 12개 팀 중 10위를 기록했다. 2004 시즌에는 8위로 순위를 끌어올리며 발전된 모습을 보였다. 2005 시즌에는 리그 최하위에 머물렀지만, 페어플레이 상을 수상하며 군인 팀으로서의 모범적인 이미지를 구축했다. 2008년 FA컵에서는 수원 삼성 블루윙즈를 승부차기 끝에 꺾고 8강에 진출하는 이변을 일으켰으나, 4강전에서 경남 FC에 패배하여 탈락했다.
원래 연고 계약이 만료되는 2008년까지 광주광역시는 약속했던 시민 구단 창단을 이행하지 못했다. 이에 광주시는 2년간의 유예 기간을 다시 요청했고, 2010년까지 광주 상무 체제가 유지되게 되었다.[5] 2009 시즌에는 국가대표 출신 공격수 최성국이 입대하면서 공격진이 강화되었고, 시즌 초반 리그 1위를 달리는 등 돌풍을 일으켰다. 하지만 시즌 막판으로 갈수록 선수층이 얇은 군인 팀의 한계를 드러내며 6연패를 당하는 등 부진을 겪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즌 초반에 쌓아둔 승점 덕분에 15개 팀 중 13위로 시즌을 마쳤다. 2010년에는 김정우와 김동현 등 수준급 선수들이 입대하여 전 시즌보다 더욱 탄탄한 전력을 갖추게 되었다.
2010년 10월 31일, 20년 동안 팀을 이끌었던 이강조 감독이 사의를 표명했고, 이수철 수석코치가 감독 대행을 거쳐 정식 감독으로 부임했다.[6] 한편, 광주광역시는 약속대로 시민구단 광주 FC의 창단 작업을 본격화하여 2011 시즌부터 리그 참가를 확정했다. 이에 따라 광주 상무와의 연고 계약은 자연스럽게 종료되었고, 한국프로축구연맹과 상무는 새로운 연고지를 물색했다. 그 결과 경상북도 상주시를 새로운 연고지로 하여 상주 상무 피닉스로 팀 명칭을 바꾸고 재창단하게 되었다.
2. 3. 이천 상무
2002년 상무 축구단 1군이 실업 리그에서 K리그로 진출한 이후, 1군과는 별개로 2군 팀은 이천시를 연고지로 하여 '이천 상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 이천 상무는 새롭게 출범한 실업 리그인 K2리그에 참가하였다. 2003년 시즌에는 K2리그 후기 리그 우승을 차지하였고, 2005년 시즌까지 K2리그에 참가하였다. 이후 2006년부터는 광주 상무로 통합되어 K리그의 2군 리그인 R리그에 참가하게 되었다.3. 선수 선발과 복무 기간
광주 상무 축구단은 국군체육부대 소속으로 운영되었으며, K리그에서 활동하는 선수 중 병역 의무를 이행해야 하는 선수들을 선발하여 팀을 구성했다. 선수 선발은 매년 이루어졌으며, 선발된 선수들은 일정 기간 동안 광주 상무 소속으로 활동하며 군 복무를 수행했다. 선수들의 복무 기간은 당시 병역법에서 정한 군 복무 기간을 따랐다.
3. 1. 연도 별 입대 선수
오승범, 김종천, 한봉현, 최배식, 남영훈, 정재운, 이도권, 김영하정석근, 조재진, 손정탁, 이현동, 박상신, 이광재, 황상필
김상식, 조원희, 서동원, 박기욱, 김대욱, 하기윤, 김만중, 한국
이동국, 김병채, 박성배, 홍복표, 이세인
박종우, 이정운, 김상록, 전우근, 김승현, 박윤화, 허제정, 김성길, 오정석, 안대현, 천우식, 최근식
윤보영, 김영철, 한정화, 박정환, 양현정, 이태유
최종범, 박주성, 이동근, 최재영, 김수형, 박혁순
정윤성, 남궁웅, 정경호, 차철호
김영근, 강용, 이윤섭, 최성현, 구경현, 조성용, 김동규, 전광진, 이익성
남궁도, 이진호, 황무규, 송근수, 여승원
강진욱, 이길훈, 이수환, 한태유, 백주현, 유현구, 고창현, 한설
남익경, 김승용
최재수, 장경진, 최병도, 이완, 송한복, 강진규, 강민혁, 박종진
박규선
전광환, 김영준, 권혁진, 박상욱, 천제훈, 강구남, 박원홍, 서민국, 박승민, 김범수, 김태민, 박진옥
최성국, 변윤철
김정우, 조용태, 김주환, 김영삼, 김민오, 변웅, 정경호, 김선우, 김지민
김동현, 주광윤, 이제규, 곽철호